방황 중 만난 위로의 하나님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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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지미션 댓글 0건 조회 14회 작성일 26-04-30 17:40본문

나는 1953년 강원도 홍천군 북방면 화동리에서 사남매 중 맏이로 태어나 할머니, 아버지와 함께 살았고, 집에서 유일하게 교회를 다녔던 할머니를 따라 초등학교 때부터 북방침례교회를 다니기 시작했다.
어린 시절 아버지는 술만 마시지 않으면 참 점잖은 분이셨다. 그러나, 술에 진탕 취해 집에 들어오면 사남매를 일렬로 무릎 꿇여 앉히고 때리곤 했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당시 하나님을 믿지 않던 아버지가 교회 다니는 것은 반대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나는 몸과 마음의 상처로 방황을 하는 중에도 교회가는 것이 좋았고, 말씀 듣는 것이 행복했다.
고향인 홍천을 떠나 원주에 신혼집을 차렸다. 돈이 없어 여인숙 근처 빈 공터를 빌려 양궁장을 만들고 장사를 시작했다. 생각보다 사람들이 찾아와 간신히 둘이 먹고 살 정도는 벌 수 있었다. 그러다 문뜩 내가 하나님의 일을 하겠다고 다짐했는데, 그 마음을 지키기 위해 아무것도 하고 있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막 배가 불러오는 아내에게는 미안했지만 더 이상 이 결심을 미루면 안될 것 같아 1978년 9월 칼빈신학교(현 칼빈대학)에 입학했다.
칼빈 대학 졸업 후 총신과정부터는 사역도 함께 시작했다. 서울 봉천동에 위치한 옥토교회가 첫 사역지였는데, 감사하게도 고향 선배가 넘겨준 가게의 장사가 잘 되어 내가 교회에서 헌금을 제일 많이 할 정도였다. 하지만 나는 재정을 풍성히 허락해 주신 주님께 더 많은 것을 드리고 싶어 수입의 대부분을 헌금했고, 우리는 헌금하고 돈이 없어 저렴하게 사먹을 수 있는 안남미(월남쌈)를 사먹을 정도였다. 나에게 부어지는 재정은 나의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 맞는다고 생각했다.
이후 하나님은 우리에게 더 좋은 것들로 채워주심을 경험했다. 어느 함박눈이 내리던 겨울에는 연탄가스가 방으로 들어와 우리 세 식구와 같이 모시고 살던 장모님까지 가스 중독으로 다 죽을 뻔한 적이 있었다. 다행히도 누군가 방문을 열고 다른 가족들을 밖으로 데리고 나왔다. 첫 사역지였던 옥토교회에서 우리 가족을 죽지 않고 살리신 분은 하나님이라고 생각한다.
옥토교회에서 2년 정도 교육전도사로 사역하던 어느 날, 담임 목사님이 할 이야기가 있다며 나를 불렀다. 무슨 일인가 싶어 가보니 사역자가 꼭 필요한 곳이 있다고 나보고 가보라는 것이 어떻겠냐는 것이다. 경기도 화성군에 위치한 수화리교회라는 곳이었다. 기도하면서 사역자라면 목자가 필요하고 더 열악한 곳으로 가는 것이 맞겠다는 생각이 들어 1980년 수화리교회로 부임하게 되었다. 내가 온 이후로도 담임목사 자리가 계속 채워지지 않아 전도사 직책으로 담임목회를 하게 되었다. 결코 쉽지 않던 사역이 시작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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