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예배란?(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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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지미션 댓글 0건 조회 7회 작성일 26-06-12 14:00본문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예배란 무엇일까?(미 6:1-8)
[원문에서 듣는 하나님의 음성]
4.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제사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은 오직 정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미 6:8).
제사로 하나님의 환심을 사겠다는 어리석은 신앙에 대해 미가 선지자는 어떻게 말하는가? 하나님께서 선한 것이 무엇인가를 이미 보이셨다는 것이다. “보이셨다”라는 말은 무슨 뜻인가? “보이다”(נָגַד)라는 말은 “정면에 두다”, “알리다”, “선포하다”, “설명하다”, “전하다”라는 말로 사역, 완료형이다(הִגִּיד). 하나님께서 이미 많은 선지자들을 통해 주께서 기뻐하시는 삶이 무엇인지 다 알게 하셨다는 것이다. 선포하게 하셨다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뜻을 밝히 알고 있지 않느냐는 것이다.
이사야 1장을 보자. 하나님께서는 헛된 제물을 다시 가져오지 말라고 하신다. 성회와 아울러 악을 행하는 것을 견딜 수 없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길로 행하지 않으면서 제물로 하나님께 드리는 그런 제사는 받지 않으시겠다는 것이다.
주께서 선한 것이란 다름 아닌 “오직 정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이것을 하나님께서 구하신다는 것이다. “구하신다”라는 말이 무슨 뜻인가? “구하다”(דָּרַשׁ)라는 말은 “묻다”, “찾다”, “요구하다”라는 말이다. 하나님께서 백성에게 요구하시는 것이 “오직 정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라는 말씀이다.
먼저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삶인 정의를 행하는 것에 대해 살펴보자. 여기에서 “정의”(מִשְׁפָּט)란 “정의”, “판결”, “법”을 말한다. 이 말은 재판관이 바른 판결을 내리거나 말과 행동에서의 정직함을 의미하는 데 쓰인다.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것이 바로 높은 윤리와 도덕성임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정의를 행하는 것이 무엇인가? 세상에서 정직하게 살라는 것이다. 잠언 21장 3절은 하나님께서 의와 공평을 어떻게 생각하시는 가를 보여 준다. “공의와 정의를 행하는 것은 제사 드리는 것보다 여호와께서 기쁘게 여기시느니라” 의와 공평을 행하는 것을 제사드리는 것보다 하나님께서 기쁘게 여기신다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삶인 인자를 사랑하는 것에 대해 살펴보자. “인자”란 “헤세드”(חֶסֶד)로 “인애”, “자비”, “연민”이란 말이다. “헤세드”의 가장 기본적인 의미는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에게 베푸시는 언약적 사랑이다. 영어에서는 “loving-kindness”(인자), “mercy”(자비), “steadfast love”(한결같은 사랑)로 번역하고 있다.
학자들은 “헤세드”(חֶסֶד)란 “힘”, “꾸준함”, “사랑”의 교차개념이 작용하고 있다고 본다. “헤세드”(חֶסֶד)를 이해함에 있어서 이 세 가지 의미를 함께 파악하지 못한다면 이 단어가 지닌 의미의 풍성함을 놓치게 된다. 힘과 꾸준함이 결여된 사랑은 감상적일 수밖에 없다. 그리고 힘과 꾸준함이 있어도 사랑이 없으면 그것은 기계적인 관계에 불과하다. 사랑에는 그 사랑을 지킬 만한 힘과 꾸준함이 동반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인자를 사랑하라는 것은 무슨 말씀인가? 하나님께서 언약의 백성을 변함없이, 한결 같은 사랑으로, 그 크신 능력으로 사랑한 것 같이 서로 사랑하라는 것이다. 어려운 자를 향해서 손을 펴라는 것이다. 고통당하는 자와 짐을 함께 지라는 말씀이다.
히브리서는 이 선행과 나눔을 단순한 사랑이라고 말씀하고 있지 않다. 히브리고 13장 16절을 보자. “오직 선을 행함과 서로 나누어 주기를 잊지 말라 하나님은 이같은 제사를 기뻐하시느니라.” 선을 행하는 것, 사랑을 서로 나눠 주는 것, 이것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예배요, 제사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삶인 겸손하게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에 대해 살펴보자.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만큼 하나님 앞에서의 겸손을 요구하신다. 겸손이란 무엇인가? “겸손”(צְנֵעַ)이란 “겸손하다”, “낮아지다”라는 말로 사역형이다(הַצְנֵעַ). 창조주 하나님 앞에 자신을 쳐서 낮아지게 하는 것이다. 겸손이란 내면의 의지적인 작용임을 알 수 있다.
겸손히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이란 하나님께서 내 모든 삶의 주인이시라는 겸손한 고백이다. 내 뜻대로 살면서 어떻게 하나님과 동행할 수 있겠는가? 자기주장을 굽히지 않는 교만한 자는 하나님과 동행할 수 없다. 하나님께서는 교만한 자를 물리치신다. 삶 속에서 겸손히 하나님과 동행하지 않는 것은 예배자의 삶이 될 수 없는 법이다.
인자를 사랑하는 것, 공의를 행하는 것, 겸손히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야말로 삶 속에서 드려지는 제사가 아니겠는가? 결국 어떤 제사가 열납되는가? 아이러니컬하게도 성전 밖에서, 교회당 밖에서의 삶이 교회 안에서의 예배의 열납됨을 결정한다는 사실이다. 예배의 회복이 무엇인가? 교회당 안에서는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를 하는 것이며, 세상에서는 거룩한 산제물의 삶을 사는 것 아니겠는가?
[우리가 들어야 할 하나님의 음성은 무엇인가?]
이스라엘 백성은 소와 양을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갔다. 오늘 우리는 무엇을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가야 하는가? 우리는 찬송과 기도와 헌금을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간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공의’와 ‘인자’와 ‘겸손히 주와 동행하는 삶’도 가지고 나오라고 말씀하신다. 종교적인 예배뿐만 아니라 거룩한 삶도 함께 가져오라는 것이다. 정직의 열매도 가져오고, 사랑의 열매도 가져오고, 자비의 열매도 가져오고, 하나님과 동행한 삶의 열매도 가져오라고 말씀하신다.
예수님께서도 마태복음 23장 23절에서의 이와 똑같은 말씀을 하셨다.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를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 바 정의와 긍휼과 믿음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
그런데 우리는 어떠한가? 우리는 교회 예배당 안에서 드리는 예배에만 목숨을 걸고, 혹시 거기서 모든 예배가 끝났다고 오해하는 것은 아닌가? 교회 예배당 안에서 드리는 예배는 시작에 불과하다. 예배를 드리고 예배당 문 밖을 나서 보라! 그 순간 만만치 않은 예배가 세상 속에서 그리스도인들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이것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세상으로 나가는 순간 정직한 삶을 통하여, 사랑을 통하여, 겸손히 주님과 동행을 통하여 하나님께 온전히 드려야 할 예배가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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